음악을 평하거나 할 수준은 아니지만, 왠지 요즘 이 이야기를 안하면 안될 것 같아서 몇자 적어봅니다. 이찬혁의 장례희망은 2022년에 나온 노래라는데, 청룡영화제 이후 너무 화재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사실 최근에 이찬혁의 행보에 대해서는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셨을 것 같습니다. 괴상하고 엉뚱하고... 'GD를 삼킨 찬혁'이라고 조롱을 받으면서 천재병에 걸렸다는 평을 받곤 했지요. YG가 애들 망쳐놓는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청룡영화제에서 이후로 그의 천재성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그 괴상한 행동들도 다 의도된 것이라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요즘은 노래를 앨범단위로 듣질 않다보니까 2년 전에는 이런 곡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청룡영화상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네요. 소름끼치는 것은 청룡영화상 때쯤 맞춰서 장례희망의 공연영상이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진짜 의도한 것이라고 봐야할런지. ㅎㅎㅎ
이 노래가 청룡영화제에 나오고 수많은 기독교 유투버들이 이 곡에 대한 의견들을 내놓았고, 신앙적인 내용의 쇼츠들도 무한생성 되고 있는 것이 요즘 분위기입니다. 얼마 전에는 대형교회 찬양팀이 예배 시간에 이 곡을 회중찬양으로 부르더군요. 예술이라는 것이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수용자의 몫이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마치 바와이가 쇼미 나와서 랩을 할 때 같은 붐이 다시 일어난 느낌입니다. 가끔 이렇게 기독교적인 컨텐츠가 일반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붐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윤복희의 [여러분]이 그랬고, 비와이가 쇼미에서 부른 [Forever]가 그랬고, 이번에 찬혁군의 [장례희망]이 그렇습니다. 아, 나얼의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같은 곡도 뺄 수 없지요.
대중적으로 유명한 가수가 본인의 앨범에 찬양을 수록하거나 CCM앨범에 참여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세상에서 탕자처럼 살아가던 사람이 큰맘 먹고 회개하듯 부르는 노래인 경우다보니 그 가수의 음악성과 신앙고백의 조화가 굉장히 어색하거나 그 가수에게 기대하던 음악성과는 너무 동떨어진 퀄리티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삶과 신앙이 연결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에서 나열했던 노래들은 이런 경우와는 결이 다릅니다.
이런 노래들이 신앙적으로 의미 있는 부분은 가수의 삶과 신앙이 구분되지 않고 연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찬혁의 [장례희망]도 '할렐루야'라는 가사가 반복되고 앞부분에서는 천국의 상황이 묘사되는 등 누가 봐도 기독교적인 내용의 곡이지만, 그것을 '찬양'이라고 분류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가수가 가스펠을 부른다'가 아니라 '크리스천이 가수로서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가 맞을 것 같습니다. 삶에서 벗어나 특별한 찬양을 부른 게 아니라 그의 삶에 녹아 있는 기독교정신이 곡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희망]이 수록되어 있는 그의 솔로 앨범 [Error]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기독교쪽에서 [장례희망]만 주목을 받고 그의 앨범 전체를 주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앨범은 이찬혁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상정하고 일관된 주제로 곡을 구성해 놓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목격담)과 죽음 앞에서의 다급함(Siren),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삶을 바라보며 죽음을 부인하는 외침(파노라마, Time Stop),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마지막 인사), 삶을 정리하며 지금껏 살아온 삶의 덧없음을 깨달은 후 남는 후회(뭐가, 부재중 전화, 내꿈의 성),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A DAY)를 담고 있습니다. 장례희망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곡입니다. 정말 꼼꼼하게 잘 만들어진 앨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에 찾아보면서 저는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에 푹 빠져서 자주 찾아듣고 있습니다.)
특히나 [Error]라는 이 앨범의 제목이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지금껏 아무 문제 없던 모든 것을 중지시키고 다르게 바라보도록 우리는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봤을 때 살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Error]를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장례식장을 자주 가게 됩니다. 각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다르겠으나, 그 죽음의 현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죽음은 우리 삶에 감춰져 있던 Error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던 그 삶에 무언가 모를 Error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나는 잘 가고 있는 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죽음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열심히 달려 왔던 시간들이 죽음이라는 순간 앞에서 모두 작동 정지가 되어 버립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2:16-20)
이찬혁이 이 앨범을 통해 말하려는 죽음이란 이렇게 우리의 삶에 [Error]가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Error]와 마주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삶 너머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국 그가 말하는 Error의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죽음 이후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현실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것이든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삶에서 Error의 지점 앞에 섰을 때 힘을 발휘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우주의 먼지일 뿐이다', '어차피 한번 죽으면 끝이다'같은 말을 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무언지 모를 허무주의가 이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내세같은 것을 믿지 않는 시대 속에서 과연 기독교가 필요한가를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 누구도 죽음이라는 Error를 만났을 때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례식'과 '희망'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Error를 마주한 한 사람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유쾌하게 노래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가진 힘이지 않을까요? 기독교가 말하는 [장례희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Error]라는 것을 이해할 때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고장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내가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가치들이 죽음이라는 순간 앞에서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희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던 받아들이지 않던 그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Error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Error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Error의 순간 앞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요한복음 11:25-27)
이 글은 우리집교회의 성도인 제이팔로님이 써주신 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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